은혜 안에 살던 신자를 은혜에서 멀어져 부패에 빠지게 하는 요인에 대해 바로 알고
지금 자신의 마음 안에서 그 위험한 부패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책!
하나님께서 더 많이 은혜를 주시기를 바랄 뿐 자신은 은혜 안에 머무르기 위해 전혀 애쓰지 않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꼭 들려 주고 싶은 책!
은혜에서 미끄러질 때, 거기서 길을 묻다.
왜 우리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을까? 은혜로부터 미끄러지게 하는 원인은 내 안에 있다.
은혜에서 물러나 부패의 위험에 놓인 이들에게 길을 찾게 하는 말씀의 빛!
잔존하는 죄의 지배로 은혜의 샘이 막혀 방황하는 모든 이에게
이 100가지 질문 앞에 서 보기를 권합니다.
은혜의 상태에 있던 그리스도인이 왜 은혜에서 미끄러져 부패하게 될까?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아무리 성화되어도,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안에는 잔존하는 죄가 있다. 그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경건한 삶의 몸부림 속에서 수많은 죄 죽임의 칼날을 피하고 살아남은 교묘한 죄이다. 그 죄는 우리가 잠시만 믿음의 경주를 게을리하면, 그 무너진 경계의 틈 사이로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와 세력을 확장한다. 그래서 우리를 조금씩 죄의 지배의 상태로 데려가, 첫 회심과 함께 열렸던 놀라운 은혜의 샘들을 모두 막아 버린다.
은혜는 죄를 물러가게 하고, 죄는 은혜를 물러가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 은혜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죄가 득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해만으로는 실제로 죄와 맞붙어 싸워야 할 때, 무엇을 경계하고 어디에 열심을 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답을 갖고 있어야, 우리는 은혜의 상태에서 뒤로 물러날 때마다 허우적거렸던 공허한 몸짓을 그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김남준 목사의 신간 <은혜에서 미끄러질 때>는 부패한 상태로 기울어지게 된 그리스도인의 고민과 방황에 대해 질의응답 형식으로 회복의 길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17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의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Indwelling Sin in Believers)에서 모티브를 얻어 풀어 나간 이 책은 독자들이 보다 선명하게 주제를 이해하고 실제의 삶에 확실히 적용하게 하고자 간명하게 구성되어 있기는 하나,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의 문제와 은혜와 부패의 교리에 관한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무엇이 나를 은혜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가? 왜 구원받았음에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본질적이고도 구체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신자가 은혜에서 멀어지는 경우를 ‘죄를 경계하지 않을 때’, ‘세상 사랑에 빠져 총명을 잃을 때’, ‘정욕에 이끌릴 때’, ‘진리를 개념적인 지식으로 쌓아 놓을 뿐 실천하지 않을 때’, ‘자기 부인이 없어질 때’, ‘기도 생활에 태만해질 때’로 나누고 각 경우에 맞춰 조목조목 상세하게 질문을 작성한 후 그에 답할 수 있는 묵상을 제시하고 있어 질문들을 따라가며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빈틈없이 점검하고 단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이 100개의 질문들을 좇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그 은혜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우리의 내적 부패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도 남아 있는 죄의 가능성과 싸워야 할 때 겪는 지성적 혼란들을 명료하게 정돈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자가당착의 무의미한 시도나 자포자기 상태에서 벗어나 어떻게 마음의 부패를 경계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실제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불신자였던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신자가 된 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된 사람이 항상 충만한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욱더 기이한 일입니다.
제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꽤 오랜 세월 목회를 한 후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성화와 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삶에 관하여 많이 설교하였습니다.
이 책은 그즈음 설교하였던 시리즈 설교문을 근간으로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라는 말씀을 기초로 신자가 어떻게 은혜의 상태로부터 멀어지는지 여섯 번에 걸쳐 설교하였습니다. 물론 그때 설교하였던 원래의 내용이 이 책에 모두 담긴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매우 간명하게 내용을 전달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저는 이 주제가 독자들에게 보다 선명하게 이해되고, 독자들의 실제의 삶에 보다 분명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쉽게 풀어썼습니다.
이 책의 굵직한 목차들은 17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의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저는 존 오웬의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Indwelling sin in believers)를 읽으면서 이 책의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풀어 나간 내용들은 저의 탐구와 사유의 산물입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전자는 때때로 기적같이 일어나지만, 후자는 언제나 그렇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일은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초월적 은혜와 함께 지성을 통해 설복하는 일상적인 은혜를 동시에 필요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인 은혜를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일방적으로 하늘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도 누리고 일상의 경건 가운데 경험되는 하나님의 사랑도 누리는 삶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너무나 심오하고 비밀스럽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듯이, 누구도 자기 마음을 다 알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과 세상, 자신과 마음 사이에서 신앙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처음 사랑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이나 은혜에서 미끄러졌으나 다시 은혜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합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다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저자 서문.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까?> p. 4-7 중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어느 날 아침, 두 사람이 일어났다. 둘 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함께 눈을 뜬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동시에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르게 반응하였다. 한 사람은 자다 깨어난 사람이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첫 회심과 이후의 회심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의 돌이킴이냐 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큰 차이를 갖는다. 첫 회심은 죽음의 상태로부터의 돌이킴이지만, 이후의 회심은 잠시 잠들어 있는 상태로부터의 돌이킴이다. 첫 회심이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에 빛을 비춘 사건이라면, 이후의 회심은 어둑어둑해진 곳에 다시 밝은 빛을 비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첫 회심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놀라운 사건이지만, 영혼이 끊임없이 쇄신되는 가운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순종함으로 참여하는 꾸준한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강렬한 첫 회심의 경험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회심의 반복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때 아무리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했다 할지라도 지금은 죄를 사랑하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안에 남은 원죄, 곧 부패성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강렬한 첫 회심뿐 아니라 그 회심의 반복적인 경험도 필요하다. 늘 회심의 은혜를 간직하고 살아야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답하기
첫 회심은 죽어 있던 영혼에 하나님의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으로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반면 이후의 회심은 첫 회심을 통해 이미 누린 새 생명의 축복을 반복적으로 다시 갱신하여 누리는 사건입니다.
p. 44-45 중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첫 회심은 우리를 단번에 은혜의 지배 속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이후의 회심은 그렇지 않다. 다시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기도가 힘차게 올라가는 경험을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단번에 은혜의 지배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마음의 성향이 되어 버린 악한 경향성 때문이다. 신자에게 죄 죽임을 위한 실천적인 노력과 분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죄의 지배로 형성된 모든 마음의 그릇된 틀들이 무너지고 성령님의 은혜로 메일매일 쇄신되어 은혜의 틀이 다시 내면에 세워져야 한다.
죄의 공격을 받을 뿐 여전히 은혜의 지배는 굳건한 상태라면, 한 번의 진실한 기도를 통해서도 마음의 유혹들을 털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은혜의 지배가 무너져 죄가 융성해져 있다면, 한두 번의 참회의 기도로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단, 그런 기도를 발판으로 다시 일어나 죄의 지배에 대항할 수 있다.
새로운 회심의 경험은 죄에 대항하여 싸울 교두보를 확보해 준다. 암벽을 탈 때, 방심하여 발을 잘못 딛으면 주르륵 미끄러진다. 그런데 그때 뭔가 단단한 디딤돌을 만나면 미끄러짐을 멈출 수 있다. 물론 미끄러짐이 멈추었다고 해서 당장 높은 곳으로 자동적으로 끌어올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발판만 탄탄하면 그것을 딛고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반복되는 회심의 경험은 죄와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좋은 디딤돌이 되어 준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답하기
첫 회심은 우리의 마음 안에 즉각적으로 은혜의 지배를 확립하나, 이후의 회심은 은혜의 지배로 들어갈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
p. 46-47 중에서
제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꽤 오랜 세월 목회를 한 후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성화와 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삶에 관하여 많이 설교하였습니다.
이 책은 그즈음 설교하였던 시리즈 설교문을 근간으로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라는 말씀을 기초로 신자가 어떻게 은혜의 상태로부터 멀어지는지 여섯 번에 걸쳐 설교하였습니다. 물론 그때 설교하였던 원래의 내용이 이 책에 모두 담긴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매우 간명하게 내용을 전달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저는 이 주제가 독자들에게 보다 선명하게 이해되고, 독자들의 실제의 삶에 보다 분명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쉽게 풀어썼습니다.
이 책의 굵직한 목차들은 17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의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저는 존 오웬의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Indwelling sin in believers)를 읽으면서 이 책의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풀어 나간 내용들은 저의 탐구와 사유의 산물입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것입니다. 전자는 때때로 기적같이 일어나지만, 후자는 언제나 그렇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일은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초월적 은혜와 함께 지성을 통해 설복하는 일상적인 은혜를 동시에 필요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인 은혜를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일방적으로 하늘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도 누리고 일상의 경건 가운데 경험되는 하나님의 사랑도 누리는 삶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너무나 심오하고 비밀스럽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을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듯이, 누구도 자기 마음을 다 알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과 세상, 자신과 마음 사이에서 신앙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처음 사랑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이나 은혜에서 미끄러졌으나 다시 은혜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합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다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저자 서문.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까?> p. 4-7 중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어느 날 아침, 두 사람이 일어났다. 둘 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함께 눈을 뜬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동시에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르게 반응하였다. 한 사람은 자다 깨어난 사람이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첫 회심과 이후의 회심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의 돌이킴이냐 하는 것에 있어서 매우 큰 차이를 갖는다. 첫 회심은 죽음의 상태로부터의 돌이킴이지만, 이후의 회심은 잠시 잠들어 있는 상태로부터의 돌이킴이다. 첫 회심이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에 빛을 비춘 사건이라면, 이후의 회심은 어둑어둑해진 곳에 다시 밝은 빛을 비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첫 회심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놀라운 사건이지만, 영혼이 끊임없이 쇄신되는 가운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순종함으로 참여하는 꾸준한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강렬한 첫 회심의 경험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회심의 반복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때 아무리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했다 할지라도 지금은 죄를 사랑하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안에 남은 원죄, 곧 부패성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강렬한 첫 회심뿐 아니라 그 회심의 반복적인 경험도 필요하다. 늘 회심의 은혜를 간직하고 살아야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답하기
첫 회심은 죽어 있던 영혼에 하나님의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으로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반면 이후의 회심은 첫 회심을 통해 이미 누린 새 생명의 축복을 반복적으로 다시 갱신하여 누리는 사건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첫 회심은 우리를 단번에 은혜의 지배 속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이후의 회심은 그렇지 않다. 다시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기도가 힘차게 올라가는 경험을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단번에 은혜의 지배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마음의 성향이 되어 버린 악한 경향성 때문이다. 신자에게 죄 죽임을 위한 실천적인 노력과 분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죄의 지배로 형성된 모든 마음의 그릇된 틀들이 무너지고 성령님의 은혜로 메일매일 쇄신되어 은혜의 틀이 다시 내면에 세워져야 한다.
죄의 공격을 받을 뿐 여전히 은혜의 지배는 굳건한 상태라면, 한 번의 진실한 기도를 통해서도 마음의 유혹들을 털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은혜의 지배가 무너져 죄가 융성해져 있다면, 한두 번의 참회의 기도로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단, 그런 기도를 발판으로 다시 일어나 죄의 지배에 대항할 수 있다.
새로운 회심의 경험은 죄에 대항하여 싸울 교두보를 확보해 준다. 암벽을 탈 때, 방심하여 발을 잘못 딛으면 주르륵 미끄러진다. 그런데 그때 뭔가 단단한 디딤돌을 만나면 미끄러짐을 멈출 수 있다. 물론 미끄러짐이 멈추었다고 해서 당장 높은 곳으로 자동적으로 끌어올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발판만 탄탄하면 그것을 딛고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반복되는 회심의 경험은 죄와 맞붙어 싸울 수 있는 좋은 디딤돌이 되어 준다.
자기를 들여다보고 답하기
첫 회심은 우리의 마음 안에 즉각적으로 은혜의 지배를 확립하나, 이후의 회심은 은혜의 지배로 들어갈 기회를 제공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