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한국 여자의 인생 현장 보고서!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열세 번째 작품 『82년생 김지영』.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 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 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 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2015년 가을
1982년~1994년
1995년~2000년
2001년~2011년
2012년~2015년
2016년
작가의 말
작품 해설_우리 모두의 김지영 /김고연주(여성학자)
그 이후로도 이상한 징후들은 조금씩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분명 김지영 씨의 솜씨도 취향도 아닌 사골국이나 잡채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정대현 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다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았다. --- p.14
“얘, 너 힘들었니? “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p.17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 p.32
김지영... --- p.165
2016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도서1팀 김은진 | 2016-11-28
82년생 김지영씨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소설은 그녀의 삶을 차분하고 건조하게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서술하고 있다. 반면 담담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나는 같은 여자로써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도 속상했던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읽기 조차 힘들었고 읽고 난 후에도 한참을 어지러워했다.
김지영씨는 삽십대 중반의 전업 주부다.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에서 남편과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에도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서울권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홍보대행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아이를 낳으며 일을 그만두었다. 언뜻 평범하고 모자람 없어 보이는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말하기 시작한다. "아이고 사부인,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예요." 어느 날은 장모님이 또 어느 날은 대학 선배가 되기도 한다.
증세를 상담하기 위해 상담 치료를 받으며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여자로써의 삶을 회고한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벌어졌던 일들,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가 포기해야 하고 동료가 되지 못하고 또 과소평가 받는 일들이 일상속에 녹여져있다.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아마도 이 또래의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만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놀랍다.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비수가 되어 균열을 일으키는지 너무나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이 아팠다. 이미 나에게도 힘들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어보게 되어 아팠고, 또 어떤 부분은 난 무심결에 넘겨 버렸던 일들 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미 난 상처를 발견해서 아팠다. 같은 여자면서도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했거나 오해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종종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본다. 비슷한 경험이 없거나 입장이 다르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그런데 소설은 다른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평범해 보이는 여성들의 삶 이면에 어떤 아픔이 있는지 간접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김지영씨의 삶은 기록 되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값지다. 김지영씨의 바람처럼 그녀의 딸은,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딸들은 그녀의 어머니 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